[김재창 자서전8]다시 부름받은 학교 경비원
[김재창 자서전8]다시 부름받은 학교 경비원
  • 김재창
  • 승인 2019.03.11 1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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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시절. 아내와 단풍 구경.
50대 시절. 아내와 단풍 구경.

언쟁 끝에 폭행사태…중상 입어

 잠시 후 순찰 차 행사장에 나갔는데, “네가 경비원이냐?” 하면서 나를 붙잡고 폭행을 한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당한 일이라서 당황, 언뜻 보니 전화했던 교무주임인 것 같아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라는 놈이 이렇게 폭행을 행해도 되느냐? 너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가 아니라 교육자란 탈을 쓴 아주 흉악무도한 깡패 족속이 분명하구나!”하고 악을 쓰며 그에게 대항했고 죽을 힘을 다해 저항했다. 이러한 싸움을 보시고 계시던 여러 학부모님께서 적극 만류하시며 선생님이 아마 술에 취한 것 같으니 나보고 참으라고 하기에 격분했던 심정을 풀지 못한 채 경비실로 돌아왔던 사건이 있었다.

 그때 그 현장에 계시면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직접 목격하셨던 교장선생님께서는 내가 근무 중일 때 경비실에 들르셔서 음료수도 사다 주셨고 또 어떤 때는 시원한 맥주까지 사다주시면서 시원하게 마시라고 하신다. 이러한 친절을 베푸시는 것은 아마 그때 그 사건(?)을 보시고 직접 말씀을 하시지는 않았으나 교무주임이란 선생의 만행이 지극히 부당했다고 생각하셔서 나를 위로해 주셨지 않느냐고 생각한다.

 내가 근무했던 U학원은 4개 학교가 모두 한 울타리 안에 위치하고 있어 경비원이 2인1조가 되어 365일을 함께 근무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성격, 환경, 인간성, 책임감 등 그들의 인격과 자질에 따라 여러 가지를 함께 근무하는데 애로가 따르기 마련이다.

 같이 근무 중 무려 열 사람이나 교체됐던 경비원들은 신분 상의 결함도 있었으나 대개가 근무 불성실로 인해 해고 됐고 최종적으로 나와 같이 근무했던 사람은 비교적 나이가 적은 50대인데 불우한 가정 형편에서 자라났던 때문인지 성격이 과도하고 책임감이 없는 정실인사로 인해 들어온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는 자기가 잘못하여 과실은 인정하고 다시는 실수 없이 업무를 철저히 수행하겠다고 다짐하고도 작심삼일. 순찰 중 잘못된 것을 내가 발견하고 지적하면 자기는 틀림없이 안전하게 점검했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하고 혼자 중얼 거리며 나보고 일부러 조작해 놓은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되풀이 하며 사소한 일도 언쟁을 했다. 그러다 그의 본성이 드러나 폭행을 당했던 사태까지 벌어져 중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하게 되며 2011년 11월 퇴직하게 됐다.

경비업체 바뀌면서 다시 채용돼

 폭행치상(6주 상해진단) 혐의로 입건 처리해 엄벌해 다시는 그 못된 버릇을 하지 않도록 고소하려고 했는데 학교 입장, 체면 등을 고려해 주라는 주변 사람들의 간곡한 부탁을 받았다. 그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고 응분의 처벌을 꼭 받게 해야 한다는 자식들의 강경한 주장이 있었으나 학교 입장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사항이니 너희들이 이해해달라고 만류해 그를 용서해 주었다.

 내가 퇴직한 후 그는 더 이상 베겨내지 못하고 오토바이 사고라는 자작극을 벌여 스스로 퇴직했다고 했으며, 또 다른 경비원을 채용했으나 성실치 못해서 경비용역업체 마저 계약 해지당하고 새로운 업체를 선정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새로운 업체와 계약을 하면서 학교측의 요구사항으로 경비원 2명 중 1명은 나를 채용한다는 특약사항이 있었음인지, 새 경비업체 경비팀장이란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게 된다. 학교측의 요구사항이니 다시 와서 근무해주라는 전화를 받고 가족들과 상의한 결과, 학교측에서 요구하는 특약사항이니 과거의 정을 감안해 더욱 열심히 근무하고 더욱더 많은 신임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폭행당해 중상을 입고 퇴직한 후 7개월만인 2012년 6월 다시 근무에 들어갔다.

 교장·교감 선생님은 물론 친근했던 여러 선생님들이 반가운 마음으로 환영하며 반겨줘 나를 더욱 감격시켰다. 식당으로 식사하러 들어가니 식당 아주머니들께서도 깜짝 놀라시며 ‘아부지(옛날부터 아부지로 통했다) 어쩐 일이냐?’며 반갑게 맞이해 준다, 학교에서 다시 근무해달라고 해서 오늘부터 근무하게 됐다고 하니 ‘여러 사람들이 아부지 칭찬을 해서 다시 오기를 바랐는데 정말 너무 반갑다’고 환영해준다, 내가 과거 근무하면서 그이들에게 특별히 도움을 드린 것도 없는데 이렇게 진심으로 환영해 주니 정말 마음이 벅차올랐다. 정상 근무에 들어간 후 나를 신임하여 다시 불러준 부담감 때문에 ‘어떻게 만족스러운 근무자가 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열심히 또 열심히 노력했다. 평일은 오후 5시 출근, 다음날 아침 7시 퇴근이었다. 토·일·공휴일은 24시간 근무하며 연휴가 겹칠때는 2박3일 또는 3박4일간 계속 근무해야 하기 때문에, 비록 육체적으로 고된 노동일은 아니지만 심신이 고달프고 피곤할 때는 수시로 몸을 풀었다. 평소 건강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 소홀함 없이 건강 관리를 열심히 해온 덕택으로 항시 건강하게 긴장하며 업무에 임했다.

너무 성실했던 공적 삶…가정사는 회한

 내가 과거 6년 동안 이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결근, 지각, 조퇴 등 단 한시간, 하루도 결근했던 사실이 없었다는 것은 내 자신이 건강을 지킨 결과라고 누구에게나 자랑하고 싶었다.

 아내가 아파서 병석에 누워있을 때도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도 하룻밤 같이 있어 간호해준 일이 없다. 정식 휴일이 단 하루도 없으니, 집에서는 하룻밤도 잠을 잘 수 없어 낮시간 같이 있다가 출근해 버리면 외로운 아내는 혼자서 고통을 참았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직장이기에 개인 사정과 가정 사정 보다는 직장이 먼저라고 생각해 왔기에 피치못할 개인 사정이 있을 때도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 혼자 움직일 수 없는 아내를 병원에 두고 직장만을 위해 출근하는 내가 과연 자랑해야 될 일이었을까!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가족을 생각하고 가장 역할도 잘해야 되는데, 병석에 누워 고통당하고 있는 아내를 혼자 두고 집을 나서는 나를 아내나 자식들은 얼마나 원망했을까? 자책하며 회한이 남는다.

 내가 속해 있는 새로 계약한 용역회사는 본사가 대전시 유성구에 있고 이곳 광주는 지사인데, 지사 규모와 운영 현황에 대해선 전혀 알 길이 없었다. 다만 경비팀장이라는 사람이 경비원 인사권을 독점, 전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 같았다. 경비원 신규 채용시도 공모이나 제대로된 검증없이 팀장의 인맥으로 채용했다. 우리 학교 근무자만해도 10개월 동안 무려 네 사람이 교체됐으며 심지어 5일 근무하다가 나간 사람도 있고, 길어야 2~3개월 자리를 지키고 있기 일쑤였다. 열악한 근무조건을 불평하며 ‘이런 곳을 가라고 했다’면서 오히려 팀장에게 불평하고 나가버리니 내가 당하는 일이 너무 고달프고 힘들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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