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동주 자서전1]노령산맥 끝자락서 자란 유년 시절
[문동주 자서전1]노령산맥 끝자락서 자란 유년 시절
  • 문동주
  • 승인 2019.06.09 14: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동주 현재 모습.
문동주 현재 모습.

해가 저물면 제 삶의 조각들이 어둠에 묻혀버릴 것 같아 가슴조이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오래오래 꽃을 바라보면 꽃마음이 되고 오래오래 별을 올려다보면 별마음이 된다는 이해인 수녀님의 ‘꽃마음 별마음’이란 시에서처럼 저 또한 살아온 삶이 제자들과의 만남의 무대였기에 먼 훗날 존경받고 학부모님들이나 동료들로 부터 신뢰받는 선생님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왔지만 기대와는 다른 悔恨의 답답한 삶이 여기에 적혀있습니다.

 만각(晩覺)을 후회하며 이제부터라도 ‘우보만리(牛步萬里)’에 함축된 정신으로 남은 인생 뚜벅뚜벅 살아갈 것입니다.

 자서전의 주요 내용을 발췌하여 광주노인신문 노다지에 연재합니다. <필자의 말>



 1부 나의 교직생활 반세기 

 교직 43년의 회고와 퇴임 후의 삶을 정리하며 사람들이 자서전을 쓰는 이유 중 으뜸은 자기성찰이라고 한다.

 짧다면 짧고 길 다면 긴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역동적인 순간에 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이를 기록하여 세상에 내 놓음으로서 새삼 관조적 시선의 중요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나 역시도 지난 삶을 정리하여 살펴봄으로써 이후의 삶에 더욱 바람직한 주관적인 해석이 가능하여 건전한 일상이 될 거라는 기대감을 안고 있기에 망설임을 떨치고 기쁜 마음으로 이 책을 엮는다.

문동주_청년 시절.
문동주_청년 시절.

 바라는 것이 있다면 매끄러운 문장이 아니더라도 내 가족들이 읽고 나의 삶의 기록 한 귀퉁이에서라도 공감하는 고개 끄덕임이 있다면 이러한 일련의 행위가 보람이요 행복이 될 것이다.

 한 가지 더 욕심을 부린다면 책 속에 담긴 나의 노력들이 누군가의 눈에 들어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라는 북돋움으로 다가간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물 흐르듯이 막히면 돌아가고 갇히면 채워주고 넘어가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더불어 물 흐르듯 지나온 세월이다. 흘러온 만큼 흘려보내고 흘러간 만큼 받아들이며 빨리 간다 늦게 간다 조급해 하지도 않고 받은 만큼 나누고, 나눈 만큼 받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살아가리라.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 넓고 깊은 바다처럼 마음의 일엽편주(一葉片舟) 세월에 띄워놓고 물줄기 따라 흐르며 남은 삶을 살아가려는 생각이다.

 이런 나의 인생 행보를 오래된 벗이 ‘牛步萬里(우보만리)’라 이름 붙여 주었다. 우직하고 꾸준하게 교육을 향한 열정 하나로만 살아 온 내 삶의 답답함을 그리 표현 한 것 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랴. 그것이 나의 길이었고 그 안에 있을 때 내가 가장 행복했음을.

1941년 태어나 6·25 고통 고스란히

 21세기라는 문명사회인데도 내 고향은 내가 퇴임할 무렵까지도 버스가 들어가지 않았던 깊은 산골이었다. 노령산맥 긴 자락이 등 줄기를 꿈틀대며 서남해안으로 흘러 함평과 영광의 경계를 이루는 군유산에 정기를 모으고 동으로는 삼각산 서로는 설매산을 감싸 안고 중앙으로 뻗어 내린 곳, 이곳이 행정구역상 전라남도 영광군 군남면 양덕리 1553번지 나의 탯자리이다.

 산이 많아 구산동(九山洞)이라 이름한 이곳에서 1941년 1월 태어났다. 아버지는 남평 문씨 31세손으로 목포에서 영신당한약방을 경영하셨다. 이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초등학교 3학년 때인 1950년에 6·25전쟁이 일어나 아버님과의 생이별하는 슬픔을 맛보았고 조부모님과 편모의 슬하에서 자라야만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에는 멀리 계신 아버지가 보고 싶어 주소만을 간직한 채 학교에 내야 할 사친회비를 노자 삼아 어른들 허락도 없이 길을 떠났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낮선 곳을 가기위하여 생면부지 트럭운전사에게 부탁해 목포를 거쳐 배를 타고 해남의 북평면 영전리까지 찾아갔다. 그때 일을 생각해 보면 비록 어렸지만 그리움으로 점철된 혈육의 정이 모든 두려움을 떨쳐낼정도로 맹목적인 것이 아니었나 싶다.

 가족들의 헤어짐과 두 분의 삼촌을 잃게 한 6·25, 나라도 국민들도 파란 많은 시대 상황이었다. 전통 있었던 학교가 불에 타 폐허로 변했고 수복 후에는 남의 창고를 빌어 축축한 땅바닥에 가마니를 깔고 공부해야 했던 너무나도 어려웠던 시대의 가운데 내가 있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고향에서 보내고 고등학교는 아버지가 한약방을 경영하고 계셨던 항도 목포로 진학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를 강력히 희망했으나 당시 생활이 여의치 않아 사범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는데 슬픔과 반항과 이해라는 3년의 세월을 보내며 사도 관련 공부를 했다.

목포사범학교 시절
목포사범학교 시절

목포에서 3년 깊은 우정의 친구들

참으로 많은 생각들을 불태웠고 청운의 꿈도 컸으나 이런 것들을 희망의 고리에 꿸 수 없는 환경적 요인 때문에 방황한 때도 많았다. 하지만 끈기랄까 억척이랄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3년 개근이라는 근성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목포에서의 3년은 나에게 많은 기억을 갖게 했다. 원불교를 다니며 좋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종교적으로 맺어진 친구들(이실, 양해찬, 이산묵, 김판선 등)이기에 오랜 세월 잊지 않고 지금까지도 정을 나누는 따뜻한 기억 속 우정이다.

 또한 ‘재목 영광학우학생회(在木 靈光學友學生會)’ 회장을 맡아 120여명의 중·고등학교 향우들과 뜻을 모아 ‘심향(心鄕)’이라는 향우지를 만든다는 목적으로 행남사, 인수당한약방은 물론 고향의 유관 기관까지 찾아 협조를 구하려고 전전긍긍하던 일, 어려움을 극복하고 탄생한 향우지를 배포하며 성취의 기쁨을 맛보았던 일들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문동주

<다음에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목련로273번길 68
  • 대표전화 : 062-520-8000
  • 팩스 : 062-522-8099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전욱
  • 법인명 : 사단법인 드림미디어
  • 제호 : 광주노인신문 노다지
  • 등록번호 : 광주 아 00282
  • 등록일 : 2018-10-11
  • 발행일 : 2018-10-11
  • 발행인 : <사>드림미디어 이용교
  • 편집인 : 채정희
  • 광주노인신문 노다지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9 광주노인신문 노다지. All rights reserved. mail to city@gjdream.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