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光樹色 (산광수색) 산 빛 나무 색이 꿈틀댄다
山光樹色 (산광수색) 산 빛 나무 색이 꿈틀댄다
  • 채정희
  • 승인 2019.06.10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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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판기
민판기

 천태산! 빛이 꿈틀거린다. 산에 나무들도 봉긋 붕긋 새싹이 곧 터질 것 같다. 자연은 그 모진 추위를 저만치 밀어내고 어김없이 봄을 부르고 있다.

 시린 바람만 불던 뒷밭에는 잡초들이 앞 다투어 나와서 따신 햇볕을 즐기고 있다. 이 놈들 봐라. 울 엄니가 살아계셨으면 이 놈들은 맥도 추지 못했을 것인데 지금은 엄니가 안 계시니 온통 지들 세상이다. 언제나 동구 밖 들어서면 이 밭에서 잡초들과 싸움하고 계시던 엄니는 이제 이 세상에 안 계신다. 엄니가 이 세상을 떠난 것이 어느새 일년이다.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 항시 자식놈만 바라보고 모두를 용서하셨던 그 거룩한 이름을 조용히 불러본다.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그랬다.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우리 엄니는 항상 뒷밭에 계셨다. 가끔 뵈러 오면 엄니는 늘 집 아니면 뒷밭에 계셨다. 바람부는 겨울이건 아지랑이 피는 봄이건 엄니는 늘 밭에서 사셨다. 아마 작년 같은 맹추위에도 울 엄니는 밭을 지키고 계셨을 것이다. 뽑아도 뽑아도 쉼 없이 땅을 밀고 올라오는 잡초들과 싸우시며 말이다.

 그렇게 흙에서 한 평생을 사시는 동안 허리는 휘고 손가락은 굽어져 “이 놈의 시상 어서 죽어야 허는디…”하시면서도 일 주일 한번, 아니면 바쁘다는 핑계로 이 주일에 한번씩 찾아가 `엄니’ 하고 부르면 “아이고 내 새끼 왔능가. 그래 바쁜데 뭐 하러 왔어”하셨다. 엄니는 말로는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나를 보면 얼굴에 금세 화색이 돈다. 자식 놈이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웬만한 일에는 눈도 꿈쩍하지 않으시던 엄니가 `하하하’하고 웃으신다. 그런 엄니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지곤 했다. 이 추운 겨울에 모시지 못하고 나만 따신 방에 살다가 의례적으로 빵 몇 개에 막걸리 몇 병 사다드리면서 면피하려는 못된 양심의 가책 때문에서다. 그래도 엄니는 이도 없이 빵을 우물우물 씹다가 목구멍으로 넘기신다. 잘 씹히지도 않은 빵을 목구멍으로 넘기시는 그 소리가 어찌나 맛있게 들리는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꿀거덕 꿀꺽. 빵으로 비어있는 위장을 다지신 뒤 막걸리 한 사발을 대접에 따라 쭉 드시고는 “아이고 기함 헐 것 같드만 이제 살 것 같다”고 기뻐 하셨다. 이렇게 엄니는 늘 밥도 드시지 않고 밭을 매셨다. 긴 트림을 하신 엄니는 “안 그래도 너를 보면 할말이 있었는데 마침 잘 왔다. 평소에는 늘 너에게 이를 말을 생각해 놨다가도 조금 있으면 잊어버린다. 내가 죽으면 누구에게 알리지도 말고 조용히 싼 관 하나 사서 여기에다 묻어버려라. 지금까지 도라지 까서 모아 둔 돈이 30만원 왔다갔다 헐 것이다. 곳간에 가면 두 번째 독아지 보리쌀 밑에 있다. 알 것냐. 명심해 잉.” 두 손에 뽑아든 여린 풀들을 가리키며 “아가 봐라. 이 잡초들은 생명력이 강해서 어릴 때 잡아두지 않으면 배로 힘이 든다. 그래서 이 추운 겨울에도 이 놈들을 뽑는다.” 그러면서 농사란 이렇게 사시사철 김 매고 가꾸고 해야 소출이 난다면서 풀을 뽑으셨다.

 어머니! 불효자식은 이제야 다시 어머니를 찾았어요. 바쁘다는 핑계로 말이에요. 이게 얼마나 가증스런 자기 합리화인줄 알면서도 제삿날 다되어서 말이에요. 하기는 살아계실 때도 못한 놈이 돌아가신 뒤에 잘하겠어요. 그래도 엄니의 가르침은 늘 가슴에 새기며 살아요. 정직해야 산다.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 사심을 버려라. 사심이 깃들면 한 순간에 모두를 잃는다. 그러고 형편이 웬만하면 나누고 살아야 쓴다. 엄니! 엄니의 가르침을 새기고는 있지만 실천하기가 쉽지 않네요.

 민판기<사)금계고전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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