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동주 자서전4] 교감으로 하남중앙 개교에 힘보태다
[문동주 자서전4] 교감으로 하남중앙 개교에 힘보태다
  • 채정희
  • 승인 2019.06.16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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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초등학교 시절 교직원들과 기념사진.
대성초등학교 시절 교직원들과 기념사진.

나는 어머님을 여의고 삼우제를 지내던 날, 은행 알 추첨기를 통해 광주대성학교를 희망지로 뽑았다. ‘더 좋은 학교도 있는데 하필이면 대성이야!’ 했지만 부임하자마자 “대성학교로 오신 분들은 앞으로 대성할 것이오”하시던 교감선생님의 웃음 섞인 덕담을 들으며 ‘이곳이 내 삶의 터전이기에 이제 마음을 정리하고 노력해야지!’라고 다짐했다.
첫해에는 2학년, 다음해에는 5학년을 맡았다. 그리고 3년간 특수학급을 맡아 나름대로는 노력도 해 보았다. 아무래도 부족함이 많아 대구대학교에 가서 특수교육에 대한 수강도 했고, 그룹 스터디를 통한 특수 분야를 공부하여 특수교사자격증(정신박약)도 획득했다.
전라남도지정 수영 및 자연과 연구학교 연구주임으로서의 경험도 했고, 당시 수영분야에 지도력을 갖춘 서울의 신승평 교사를 찾아가서 지도받기도 했다. 훗날 그 분이 서울교육연수원장으로 부임하여 왔기에 서울교육연수원에서 열리는 전국연수원장회의에서 만나는 기쁨도 맛보기도 했다.
대성학교에서의 5년 세월은 승진이라는 기다림 때문에 매우 많은 시련을 겪기도 했으나 김덕중, 송문섭, 정병욱 교장선생님의 따뜻한 지도를 받는 복도 있었다.

평교사 시절의 마지막 장산교
영광교육청에서 학무과장으로 모셨던 배석륜 교장선생님을 장산초등학교에서 만나게 되었다.
5학년 담임에 교무업무는 ‘수학경시’지도였다. 당시에는 수학 경시대회라는 것이 교육청 시책으로 실시되었는데 그 수학경시 업무를 맡으라는 것이다. 사실 국어과에는 관심을 가졌지만 수학분야는 취미도 개인 실력도 없는 터라 솔직히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어쩌면 평교사로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을 가다듬고 서울에 있는 교보문고를 찾아가 참고도서를 구입하고 앞서가는 동료들의 지도 유인물들을 습득하여 학습지로 제공하는 등, 담임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지도한 결과 금·은·동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개교 이래 처음이라는 교장선생님의 칭찬의 말씀을 들으며 애들처럼 즐거워하기도 했다. 나는 마지막 교사시절을 더 보람 있게 더 멋지게 장식하고 싶어 아이들을 특별한 애정으로 보살폈다.
그런데 11월 1일, 하남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승진 발령되었다는 낭보가 날아왔다. 얼마나 기다렸던가! 자격증을 받은 지 5년 8개월!  기쁨과 왠지 모를 허전함으로 많은 시간을 애들과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고 눈물의 이별을 해야 했다.

열정이 있었던 시절 7080
영광에서 ‘연우회’라는 자생적 연구써클을 만들어 활동해 왔던 일을 소개한 바 있지만, 광주에 와서도 국어과 써클 총무로 8년이나 함께 했고, CBS 라디오 가정교실을 6개월간 방송했던 기억은 가슴 뿌듯한 추억이다. 그리고 ‘으뜸회’라는 평가단에 합류하여 활동했던 시간들은 언제 되돌아보아도 보람으로 다가온다.
당시 이런 연구 활동은 전국적인 현상이기도 했지만, 그즈음엔 광주와 전남이 분리되지 않은 시점이기도 했고 선생님들이 교과써클은 물론 다양한 동호 조직을 구성하고 연구 활동이 매우 활발했던 교직사회였다.
생각해 보면 100여명의 국어과 써클 회원들이 매월 모여 국어과 관련 교수들의 강의를 듣고 토론하고, 때론 실제 수업을 공개하고 현장에서 반성 회를 갖는 등 의미 있는 지속적인 활동을 통해 새롭고 폭넓은 지식을 습득하는 계기가 되었고 좋은 분들과의 교감의 시간이 많아짐으로서 더욱 전문성을 갖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 된다.
또한 모 업체에서 ‘CBS라디오 가정교실’이라는 학습지를 만들어 판매하고 그걸 방송을 통해서 해설하는 일이 약 6개월간 지속되었는데 4, 5, 6학년을 대상으로 국어(문동주) 수학(송융근) 사회(정용우) 자연(이호창)교과를 1회 20분간씩 방송했던 기억이 새롭고, 어쩌다 먼지 쌓인 당시의 책자나 내 목소리가 담긴 녹음테이프를 꺼내 다시 들어 보며 원고 작성을 위해 노력했던 일이며 처음으로 접해보는 방송이었기에 가슴 조였던 일들이 떠오르며 참으로 나의 교직생활 중 대단한 열정의 시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모 출판사에서 ‘으뜸총정리’라는 학습지를 만들고 ‘으뜸회’란 조직원들을 구성했는데 나도 그 일원이 되어 활발히 활동했던 일. 또다른 출판사에서는 전남이나 광주 기타 경상도 지역까지 양질의 문제지를 생산 공급하고자 출제위원을 선정하였는데 시내 초등학교 선생님들 중 각 교과별로 2-3명씩 선발되었다.
이 일은 나 개인적으로는 많은 공부를 하게 했고 자신을 성장시키는데 상당부분의 영향을 주었다. 지금도 그 조직체의 몇 사람들이 ‘으뜸회’란 이름으로 모임을 지속하고 있는 걸 보면 어느 시점에서 뜻을 같이했다는 게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를 증명하고도 남는 일이다.
요즈음 7080이란 이름으로 당시를 기억하게 하는 행사들이 많지만 당시의 교육계에도 이런 연구 활동이나 써클 활동이 매우 왕성했던 시기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하남중앙초등 교직원들과 나들이 사진.
하남중앙초등 교직원들과 나들이 사진.

학사업무보다 시설 감독
교감자격증을 받은 지 6년여 만에 현장 교감으로 발령받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임길주 교장선생님과 학교 현장을 찾았다. 학교는 뼈대만 앙상히 드러내 놓고 이제 벽돌을 붙이고 있었다. 우린 하는 수없이 하남초등학교 과학실 귀퉁이에 사무용 책상을 놓고 근무를 시작했고 학사업무보다는 시설 감독 쪽에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드디어 이사를 했고 3월 2일 17학급 규모로 개교했다.
오랜 기다림, 현장감독, 이제 야 살아 움직이는 기분이 들기도했다. 신설학교를 안정된 모습으로 바꿔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새삼 느끼기도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력했던것 같다.
질척거리는 운동장으로 송정동교 이관현 교장선생님께서 직접 학생들을 인솔해 오셔서 맞이했던 일, 교가를 만들고 환경을 구성하고 나무를 심고, 짬을 내어 교직원 친목 배구도 하고 참으로 바쁜 일정 속에서 생활했기에 1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지만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 것은 열정이 있으면 모든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곳 월곡동 부근이 대도시로 변모되었지만 그때는 구획정리만 된 채로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당시 교직원들의 노력과 학부모님들의 뒷받침이 어우러져 그래도 안정된 학교분위기를 조성했던 기억들은 오래 간직될 것 같다.
나는 학교경영에서 역부족임도 깨닫게 되고 늦었지만 공부도 더해야겠다는 욕심에 조선대학교 교육대학원에 입학했고 교육행정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한 것도 교감과 장학사 시절의 일이기도하다.
그곳의 자연환경과 지명, 그리고 주민들의 진취적인 기상 등 다양한 자료들을 토대로 필자가 교가를 작사했고 권혁문 교장선생님께서 곡을 붙인 교가는 영원하리라 믿는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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