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남은 쌀 한 톨을 들어 올리다
겨우 남은 쌀 한 톨을 들어 올리다
  • 황해윤 기자
  • 승인 2019.11.08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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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농꾼 김현인 씨 책 ‘논 벼 쌀’펴내
우리문화의 근원, 논 벼 쌀에 얽힌 대서사
글쓴이 농부 김현인.
글쓴이 농부 김현인.

 농업이 죽어가고 있다 농민이 죽어간다 농촌이 죽어간다 농업 정책이 농업말살 정책이었던 시간들 농업을 희생시켜 온 시간들이 지금의 결과다 ‘논둑’이 사라지고 있는 자리에서 “겨우 남은 쌀 한톨을 들어” 그 안에 담긴 장엄한 역사와 문화에 대해 ‘무겁게’ 풀어낸 책 한 권이 나왔다 책 ‘논 벼 쌀’(부제: 겨레의 숨결 국토의 눈물 전라도닷컴)이다
 ‘논 벼 쌀’은 오랜 세월 동안 우리의 주식이었던 쌀이 만신창이가 되어 버려지는 현실을 지켜보며 피눈물을 흘리는 심정으로 쌀농사에 뛰어든 전라도 농꾼 김현인(66·곡성군 옥과면 설옥리) 씨의 글을 엮은 책이다. 논, 벼, 쌀에 관한 생태와 환경, 역사와 문화, 철학과 과학이 아우러진 방대한 지식과 사유, 생생한 쌀농사의 체험과 농민의 감성이 녹아든 ‘종합 보고서’다. 민족의 죽살이를 관통하는 역사란 논, 벼, 쌀에 있어 ‘겨레의 숨결, 국토의 눈물’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벼가 베어지던 날 들에는 젖냄새 가득”
 한 농부의 격정과 그리움, 애통함이 책 속에 흘러 넘친다 저자의 이력을 보면 그도 그럴만 하다
 “한때는, 벼농사가 이대로 스러져서는 안 된다, 나 하나의 옹이라도 박아야지, 이 땅에 벼농사를 없애겠다고 우루과이라운드가 설치던 시절, 오십 줄을 앞두고서 일찍이 버려진 산골 논을 찾아 젖먹이처럼 달라붙었고. 그 세상이 빤빤해지기도 전에 내 농사짓부터 무너져 속절없이 잃었던 한심한 것이기도 했었다.”(‘50평 논둑길, 진주성 가는 길’ 중)
 그는 쌀이 벼랑 끝에 선 암담한 순간, 50평 무논에 첫발을 디뎠다. 전남 장흥의 다랑논을 찾아 시난고난 우리농법으로 시작한 쌀농사를 곡성으로 옮겨 왔다.
 저자는 논과 함께 사라져버린 ‘그이’들을 찾아 ‘쌀’을 따라간다 ‘그이’들은 “북어꾸러미라도 종이에 말아 들고 와 자네들 어여쁜 손목을 아껴야지, 두드려놓고 가던 이들” “콩나물시루에 두부도 판째로 부려놓고 명절 잘 쇠라며 정(鼎)지간에 인사하던 빤한 살림의 그이들” “낼모레가 개 건너 마을 박가네 제일(祭日)이고 보름 뒤엔 모퉁이집 서울 손주 백일이지, 몇 번이고 주머니를 뒤져보다 빈손에라도 들러 보던 이들”이다
 저자는 시장개방과 자유무역이라는 거대한 물결에 휩쓸리면서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을 잃어가고 있는 지를 책에 담고 있다. 논둑길을 감아 돌며 흐드러졌던 오천년 우리문화가 쌀과 함께 가뭇없이 사라지고 있음을 경고한다.
 “1950~60년대를 보내온 제 어린 기억 속에는 우리 역사의 반만년 연대기라고도 할 것들이 적잖이 남아 있었고, 1970~1980년대까지도 그 맥박의 여운이 아련한 뒷자락을 보여줍니다 그래 후일의 제 벼농사라는 것은 하루하루 무딘 눈을 부벼가며 그것의 극히 일부를 복기해 보던 셈이던 것이었고, 이를 오늘에 글자로 잠시 적은 것일 뿐입니다”(‘논 벼 쌀, 그 회상의 후기’ 중)
 논 벼 쌀을 따라가다 보면 유장한 역사와도 만날 수밖에 없다

 
 ▲논에 모를 심으며 진주성을 생각했다
 
 ‘논에 모를 심으며 진주성을 생각했었다’는 그는 1593년 진주성 2차 싸움에 뛰어든 호남의병들이 9일 밤낮으로 밀려오는 왜적과 맞서다 성안의 백성들과 더불어 절멸했던 항전을 가슴에 새긴다. ‘호남을 발판 삼아 조선을 결딴내려던 야욕’을 꺾은 의로운 장수와 용맹한 사졸들의 족적은 진주성을 등졌던 무리들에 의해 왜곡되고 최경회의 정경부인 신안 주씨 논개를 왜적의 첩으로 날조하는 참담한 지경에까지 이르렀음을 통탄한다. 오늘 우리 눈앞에 펼쳐진 들판에 서린 앞선 농군(農軍)들의 희생과 헌신을 떠올리며 바로잡아야 할 역사의 굴절을 적시한다.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눈물의 고려인 동포들이 동토의 긴 겨울을 이기고서 이듬해 곧바로 아이들의 학교부터 세운 뒤, 밭작물로 근근한 그곳의 소금땅 황무지에 피눈물로 물을 끌어와 애써 논을 치고 벼를 심었던 전적이야말로 논과 벼와 쌀로써 대의를 세우며 풍속을 이끈 무리의 의기를 그대로 그려 보인다.”(‘삼장사(三壯士)의 나라’ 중)

 

 

 쌀이 그저 그런 식량이 아니며, 벼가 온갖 곡물 가운데 하나가 아니며, 논 또한 함부로 해서는 안 될 성역(聖域)이라는 애끓는 호소가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이어진다. 쌀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저울질하고 무역협상의 손쉬운 거래조건으로 전락시킨 패륜과 무지를 개탄한다.
 “방방골골의 형색 따라 논둑길이 굽이칠 때마다 제각각 한 세상씩을 펼쳐서 법과 제(制)를 맺고 춤사위를 일구며 풍물의 규범이 등뼈를 세웠었다 … 그 논둑이 사라진 것을 아는 이도 드물다.”(‘구만리 논둑길’ 중)
 “벼의 떳떳한 모습은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거친 피 포기 위에 떨어진 경우조차 볍씨는 당연한 듯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낸다. 매국노가 설치는 세상에 눈 부릅뜬 이가 있었듯이, 아무리 좁은 공간이더라도 그것들은 주변의 다른 풀뿌리에 빌붙거나 밀어내며 근근이 살지 않는다.”(‘벼’ 중)
 “우리 국토의 30억 평 무논에 세상의 소문 없는 꽃밭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유라시아 대륙과 대양의 푸른 물을 뼈마디로 이어주던 곳, 이 땅을 수평 잡는 비장의 추가 되듯 억만의 볏잎들이 날을 곧추세울 때, 감춰진 그림자처럼 그것들의 꽃이 핀다.”(‘벼꽃, 자마구’ 중)
 
 ▲우린 모두 쌀을 무너뜨린 반역자들
 
 “벼가 베어지던 날 들에는 어김없는 젖 냄새가 가득했었다. 볏짚에서, 그 그루터기 볏동에서 잊힌 전설처럼 그것들이 배어 나와 퍼지면, 농사꾼도 낫질을 멈추며 잊은 가슴을 더듬었고, 집에 둔 어린것에 멀리 가신 어머니에 상념이 깊어진다.”(‘볏짚’ 중)
 그는 “쌀의 소화효소들이 우리 생애의 첫 장면부터 등장하여 목숨의 마지막 현장까지 지키는 것이어서 암죽과 미음으로 일생의 시종(始終)을 붙잡아 주는 것”이라며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비타민 등 모든 면에서 최고의 위용과 효과를 지닌 쌀의 가치를 역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쌀을 철저하게 짓밟은 박정희 정권의 패악부터 쌀밥을 당뇨병의 원흉으로 지목해 국민 정서를 자극하거나 ‘쌀과 귤이 뭐가 다르냐’는 잘못된 행태들이 쌀시장 개방이라는 둑을 허물었다고 비판한다.
 그는 쌀이 무너지는 과정에 연루되었거나 휘둘려버린 우리 모두를 ‘반역자들’이라고 적는다. ‘음모’ ‘광인의 나라’ ‘버림받은 쌀’ ‘쌀을 두려워하는 자들’이라는 제목의 글들을 통해 쌀에 지워진 부당한 오해와 굴레를 반박하고 쌀시장개방의 불가피성을 교묘하게 퍼뜨리고 수용해버린 정부와 농민단체를 통박한다.
 논둑이 허물어지고 벼꽃이 더 이상 피지 않는 여름이 온다면, 황금바다 장관이 사라져버린 가을날의 적막강산이 오게 된다면? 그 세상에 사는 ‘우리’의 삶 역시 피폐해져 있을 것임은 자명해보인다
 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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